한달(죽기)살기 마지막 날(이라고 우기는 날) 있었던 일

 

일기 쓸 게 많은데 (1. 여기저기 다닌 데 후기 / 2. 요가 강사 자격증 후기 / 3. 한달살기 후기) 이날 일기만큼은 기억을 잃기 전에 최대한 써 두고 싶어서.

 

이날은 10일이었고, 일정으로 따지자면

9일: 아침 일곱 시 전에 일어나서 요가타월이 완전히 푹 젖도록, 누가 내 몸에 바가지로 물 들이부은 것처럼 땀 흘리도록 한 시간 반 동안 핫요가 → 우붓 떠나기 전에 사야 할 것들 산다고 눈코 뜰 새 없이 계속 움직임 ㄹㅇ 10분도 쉬지 않고  →  나보다 크고 무거운 짐 이고 지고 들고 우붓에서 누사페니다 섬으로 이동

이런 날 다음에...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 다이빙을 하러 나감 다이빙 하고 짐 좀 정리하고 누사페니다 섬에서 발리 섬까지, 발리 섬에서 공항까지 가는 배편이며 차편이며 알아보고... 어디 밥집인지 카페인지 멋진 곳으로 가서 뷰 감상했다

 

 

저녁 대강 해결하고 앉아서 로그북 쓰는데... 뭔가 하나도 즐겁지가 않은 거임? (실제로 로그북에 나 다이빙 권태기 같다고 씀 ㅋㅋㅋ 권태기는 무슨... 다음 날 다이빙 개행복하게 햇음^^... 마치 체력 떨어진 뽀삐가 자기 내향인 같다고 하는 것처럼.../.......) 이때는 그냥 피곤한 건 줄 알았어 내가 이틀 내내 조금도 쉬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을 계속 몰아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음 멋진 카페에 와서 식사하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몸은 착실히 체력을 소비해야 한다는 걸... 몰랐음 아마 슬슬 감기몸살이 걸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함 이땐 몰랐지

 

그러고 집 돌아오면서 뽀삐한테 전화해서 징징거리면서... 나 이제 힘들다 한곳에서 2주 이상 있는 게 좋지 이렇게 계속 짐 싸고 풀고 돌아다니고 하는 건 피곤하다 나 이제 여행 힘든 것 같다 이러고 ㅋㅋ 마음도 몸도 다 지치고 피곤하고 하나도 안 즐거운 상태로 방에 들어옴

 

그러고 베란다로 나갔는데...

 

 

밤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잔잔하고 고요한 파도 소리 위로 기타 반주의 라이브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는 거야... 라이브바가 옆집이었는 줄 몰랐음... (심지어 여기서 아메리카노도 판다 발리니즈 커피 아니고 아메리카노...) 나 바로 전날밤 이 베란다에서 무슨 생각했었냐면 아 먹구름이 너무 끼어서 달이 안 보이네 여기 머무는 동안 한 번이라두 이 베란다에서 달 보고 싶다 생각했었거든...? 근데 달만인 게 아니라 그냥 너무...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국의 낭만적인 밤바다 종합세트 그 자체였음...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ㅋㅋㅋㅋㅋ 마치 발리가 '이래도 안 행복해? 이래도 지쳐? 이래도 부정적일 수 있음?ㅋㅋ 해보든지' 이러는 것 같앗음 진짜로ㅠㅠㅋㅋㅋㅋ

 

정말 너무너무 잔잔하고 편안하고 행복했다 베란다에 앉아서 가수한테 편지도 썼음 나 오늘 너무 힘들었고 다 지쳐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는데 베란다로 와서 네 노래 듣고 다시 여행을 사랑하게 됐다고 그렇게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그러고 편지랑 팁 들고 뛰어가서 바 테이블 앉아서 노래 들었어 행복하게...

 

그러다 잠깐 쉬는 시간이라 그러길래 가수한테 가서 편지 줬다 히히 그러니까 애가 내 테이블로 오길래 같이 수다도 떨었음 애가 가수는 가수인지 자기는 한국 노래 중에서는 영화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 아니 애가 뭘 좀 알아...? 솔직히 외국인들 한국 노래 아는 거 강남스타일이랑 아파트밖에 없던데 ㅠㅠ 얘는 그 얘기 하나도 안 꺼내고 한국 영화음악이 진짜 아름답고 장면과 감정을 완벽하게 담아낸다고 정말 좋아한대... 그래서 나도 흥분해서 맞다 나도 한국 영화음악 좋아한다 외국인 가수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너무 신난다 이런 얘기 나눴어

 

근데 애가... 갑자기 너무너무 고맙다면서 (사실 진짜 고마운 게 편지였는지 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건 그냥 모르는 것으로 넣어두자)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거임...? 한두 곡만 더 부르고 나 무대로 부르겠대 ㅋㅋㅋ 아니 뭔소리야ㅠ 나 노래 못하고 나 그냥 행복하게 너희 목소리를 즐기게 해 줘... 했는데 도무지 내 말을 들어주질 않더군

 

 

그래서 놀랍게도... 발리의 어느 섬 라이브바에서... 발리 가수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... 내 생애 이런 짓(?)을 하게 될 줄 정말 몰랐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핸드폰 배터리가 딱 내가 노래하려고 앉은 순간 0이 되어서 내가 노래하는 영상은 사라졌고 내 마음속의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ㅋㅋㅋㅋ

 

그러기 전에 내가 뽀삐한테 아마도 핸드폰이 꺼질 것 같다 근데 어차피 10시에 공연 끝나고 (10시 되기 얼마 전이었음) 바로 옆집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해 뒀어 근데... 얘네가 나랑 노래 부르고 나서 몇 곡을 더 부르면서 10시를 한참 넘기는 거야... 내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고... 결국 얘네 마지막 곡을 못 듣고 그냥 와 버렸음 ㅠ_ㅠ 뽀삐가 너무 걱정할까 봐... 근데 돌아와서 핸드폰 켜 보니 걱정은 ㄹㅇ 1도 안 하고 애가 아주 바쁘더라고ㅡㅡ????? 난 무려... 내 여행을 완성시켜 준 가수친구들의 마지막 곡을 버리고 왔는데...??????????? 다시 생각해도 괘씸함 ㅡㅡ 나는 집으로 뛰어오는 3분 동안 하ㅠㅠ 어떡하지 뭐라고 하지 너무 놀란 건 아니겟지 싹싹 빌어야겟다 생각하면서 왔건만 ㅡㅡ......

나의 이 마음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공연 영상이 없는 것으로 복수햇음 ㅇ.ㅇ

 

암튼 최고로 행복한 밤이었고 지치고 피곤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서 기쁘고 값진 밤이었다 이제 여행하다 지쳐서 권태기(ㅋㅋ) 접어든 것 같다 느끼면 오늘 밤을 떠올릴 것 같아

 

그리고 역시...^^............. 체력을 생각해야 한다... 여행지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쉬어 주면서 놀아야 제대로 놀 수 있다...

 

(저 라이브바 달려가서 보낸 시간... 최고로 행복했지만! 몸은 착실히 체력 쓰고 있었지 결국 다음 날(지금 시점으로는 어제) 몸살 제대로 나서 하루 종일 앓아누움^^... 진심 다이빙 하고 오자마자 드러누워서 자고... 잠깐 깨서 국밥을 울부짖으며 겨우 그 라이브바로 다시 기어가서 스무디랑 피자 먹고 다시 기어와서 또 자고... 일어나서 포장해 온 다 식은 피자 먹고 또 자고^^...... 그게 사실상 내 발리 한달살기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내 마음으로는 아니라고 우기는 중)